어지럼증으로 병원을 방문하면 사람마다 다른 진단명을 듣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석증, 또 어떤 사람은 메니에르병 또는 경추성 어지럼증이라는 이름을 듣습니다. 약도 치료도 달라지지만, 증상은 계속되고 이 질환들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이 어지럼증들은 서로 다른 병이 아닐 수 있습니다. 경추정렬 이상 그리고 귀와 목을 연결하는 근막 체계의 기능 장애라는 공통된 병인에서 시작되는 증상들이라는 관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즉, 같은 뿌리에서 파생된 증상들의 스펙트럼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세 질환, 하나의 병? – 스펙트럼 이론
2021년 인도의 한 연구팀은 이 질환들이 하나의 뿌리에서 파생된 증상들이라는 관점을 제기했습니다. 메니에르병, 이석증, 경추성 어지럼증을 각각 독립된 질환으로 바라보는 기존 관점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으며, 이들이 모두 공통적으로 목과 어깨의 근막 긴장, 경추정렬 이상 같은 근골격계, 특히 근막의 장애에서 비롯된 문제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Revisiting Meniere’s Disease as Cervicogenic Endolymphatic Hydrops – Jain et al., 2021).
연구 결과에 따르면
- 메니에르병 환자의 86%
- 이석증 환자의 약 70%
- 경추성 어지럼 환자의 90% 이상
이들이 목통증과 긴장, 두통, 어깨 비대칭, 근막 긴장을 함께 겪고 있었습니다.
더 주목할 점은, 연구팀이 이 환자들의 경추정렬과 근막에 대한 치료를 진행했을 때 어지럼증 증상뿐만 아니라 전정 기능까지 회복되는 것을 확인했다는 것입니다.
연구팀은 이런 공통점을 통해 이 세 가지 어지럼증이 따로 독립된 병이 아니라 공통된 구조적 문제에서 파생된 스펙트럼일 가능성을 제기했습니다. 이 구조적 문제의 중심에는 목의 정렬 이상과 근막의 만성 긴장이 있다는 것입니다.
왜 ‘목’이 어지럼증을 만들까 – 4가지 병리기전
어지럼증은 어떻게 목과 근막의 문제로 발생하는 것일까요? 목과 귀, 근막과 전정계는 복잡하게 연결된 하나의 시스템입니다.
1. 척추동맥 압박으로 인한 내이 허혈

경추, 특히 상부 경추가 틀어지면 그 사이를 통과하는 척추동맥이 압박됩니다. 이 동맥은 뇌간, 전정기관이 있는 내이로 가는 주요 혈관입니다.
경추가 틀어지면 전정기관으로 가는 혈류 공급이 감소하고, 결국 산소와 영양 공급 부족으로 내이 허혈과 어지럼증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2. 근막 긴장과 뇌척수액 흐름 이상으로 내림프압 상승


목 뒤 근육이 경직되거나 긴장하면 뇌척수액의 흐름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뇌척수액은 머리와 귀 안쪽 압력을 조절하는 중요한 체액입니다.
경추부 근막이 조이는 압박은
- 뇌척수액 압력 증가 → 내림프압 증가 → 내림프 수종 유발
3. 경추 감각 수용기 이상 신호로 인한 전정계 왜곡


경추에는 고유감각 수용기들이 밀집해 있습니다. 특히 C1부터 C3(상부 경추)의 관절 수용기와 근방추는 전정계와 직접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 부위의 감각 정보가 왜곡되면 몸은 정상임에도 불구하고 어지러운 감각을 만들어냅니다. 이런 경추성 어지럼증의 메커니즘은 메니에르병과 이석증에서도 동일하게 작용된다는 것이 연구진의 주장입니다.
4. 근막 연결 체계의 감각 충돌

귀와 경추는 근막으로 하나의 연결망을 형성합니다. 이 체계는 신경 감각 신호를 전달하고 통합하는 역할을 합니다.
목 근막이 긴장하면
- 귀에 전달되는 감각 정보 왜곡
- 전정기관의 입력 혼란
- 평형 감각 붕괴
- 어지럼증 발생
이처럼 목에서부터 시작되는 감각회로 전체의 문제일 수 있습니다.
치료의 전환점 – 이석 치환술만으로는 부족하다
목의 정렬과 근막 체계의 이상이 귀에 영향을 미쳐 어지럼증을 유발하는 원인이라면, 어떻게 치료할 수 있을까요?
이석증에서는 흔히 이석 치환술이 활용됩니다. 하지만 많은 환자들이 이석 치환술을 받으면 일시적으로 괜찮아졌다가도 며칠이나 몇 주 지나면 다시 어지럼증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왜 그럴까요?
돌이 빠진 원인이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즉, 귀 안의 이석은 되돌려 놨지만 그 이석이 계속 빠지게 만드는 몸의 구조적 원인은 그대로 남아 있는 것입니다.
경추정렬 교정과 병행한 치료의 효과
2020년 터키의 한 연구팀은 이 문제를 이석 치환술과 함께 경추정렬 교정을 병행해서 해결할 수 있다고 보고했습니다(The Effect of Cervical Manipulation in BPPV Patients with Neck Pain – Kültür et al., 2020).
연구팀은 이석증 환자 중 경추정렬에 문제가 있는 환자들을 대상으로 두 가지 치료를 비교했습니다.
- A그룹: 이석 치환술만 단독 시행
- B그룹: 이석 치환술 + 경추정렬 교정 병행
결과는 명확했습니다.
경추 치료를 함께 받은 그룹은
- 어지럼증 증상의 완화
- 전정기능 검사에서 병적인 안구 움직임 감소 (신경학적 회복)
- 재발률 현저히 감소
즉, 귀에 영향을 주는 경추와 근막의 구조적 불균형까지 바로잡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경추정렬과 근막 체계는 놓쳐선 안될 배경원인

귀와 목, 그리고 그 사이를 연결하는 근막 체계까지 몸 전체를 하나의 통합된 시스템으로 보아야 비로소 원인을 이해하고 회복의 길을 찾을 수 있습니다.
- 이석 치환술을 받았지만 증상이 재발하는 경우
- 메니에르병 진단을 받았지만 약물 치료 효과가 미미한 경우
- 목과 어깨 통증, 두통을 동반한 어지럼증을 겪는 경우
경추정렬과 근막 체계에 대한 통합적 접근이 새로운 해답이 될 수 있습니다.
이석증, 메니에르병, 경추성 어지럼증… 서로 다른 병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하나의 뿌리에서 비롯된 스펙트럼일 수 있습니다. 귀와 뇌 사이, 그리고 그 깊숙한 연결 고리인 ‘경추 정렬’과 ‘근막 체계’의 기능장애라는 공통된 병인에서 비롯된 증상들이라는 관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